제      목: 2011-18-미스터 핍
이      름: 요나단
작성일자: 2011.05.31 - 17:27
모두가 그를 퉁방울눈이라 불렀다. 내가 말라깽이 열세 살이었던 시절, 나는 그가 자신의 별명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은 앞을 쳐다보는 데만 열중하고 있어 맨발의 우리들이 있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일을 목격한 후 그 일을 잊을 수 없어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큼직한 머리에 박힌 그의 커다란 눈은 어느 누구보다 튀어나와 있어, 마치 눈 스스로 얼굴 밖으로 빠져 나가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의 그런 눈을 보고 있자면 집을 재빨리 뛰쳐나오려다 그만 뒷덜미가 잡힌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7)

 퉁방울눈은 부인이 탄 수레에 노끈을 매어 끌고 다녔다. 퉁방울눈 부인은 얼음 여왕처럼 보였다. ...  오후 2시30분이 되면 앵무새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삼분의 일쯤 더 길어진 사람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행렬을 이룬 사람들은 퉁방울눈과 퉁방울눈 부인 두 사람뿐이었지만 이들은 마치 행진을 하듯 돌아다녔다. (8)

  어린아이들은 기회를 틈타 그 뒤를 따라다녔다. 어른들은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곤 했는데, 썩어가는 파파야 나무 위를 오가는 개미 떼를 쳐다보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9)

전쟁에 관한 소식은 ‘아마도’와 ‘그렇게 들었다’는 말과 함께 단편적으로 전해졌다. .. 소문이란 그것을 믿을지 믿지 않을지를 듣는 사람이 알아서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던가. (19)

“난 이곳이 너희들의 앞날을 환히 비쳐줄 빛의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우리가 이 말을 이해하도록 잠깐 여유를 두었다. (29)

내가 너희들에게 말할 수 있는 진실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너희들과 나 사이에 있다는 사실이다. (32)

열대 지방에서는 밤이 빠르게 다가온다. 지나간 낮의 흔적을 더듬어 볼 여유도 없이 순식간에 어둠에 묻히는 것이다. 야위고 추레해 보이던 개들이 어느새 검은 그림자로 바뀌어 있곤 했다. (38)

그래서 그날 밤 자리에 누웠을 때 어둠 속에서 나는 아버지가 행복한 분이셨냐고 엄마에게 여쭤보았다. 엄마가 말씀하셨다. “정작 그래야 할 때에는 안 그러셨지. 그러나 술만 들어가면 늘 즐거워하셨지.” (42)

그때쯤 나는 이 책에서 대장간의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대장간은 고향 같은 곳이었다. 대장간은 하나의 삶을 형성해온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장소였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밀림의 오솔길이었고, 우리를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는 산이었고, 이따금 우리에게서 멀찍이 달아나곤 하는 바다였고, 검둥이가 내장을 드러내고 죽은 것을 본 이후 내 콧구멍에서 떠나지 않는 비릿한 피냄새였다. 그리고 그것은 뜨거운 햇볕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먹는 과일이었고, 생선이었고, 견과류였다. 밤이면 들려오는 술주정꾼의 고함소리였다. 그것은 임시 변소의 구린 냄새였다. 그리고 때론 바다처럼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듯 보이는 키 큰 나무들이었다. 그것은 밀림이었고, 우리가 얼마나 작고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밀림 속 거대한 나무들이었고, 그 나무들이 햇빛을 향한 욕망으로 뻗어 올라 하늘을 가린 풍경이었다. 그것은 개울물에서 빨래를 하는 여인네들의 웃음소리였고, 몰래 자신의 누더기를 빠는 소녀를 발견하고는 농담을 걸고 놀리며 즐거워하는 여자들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그것은 두려움이자 상실감이었다. (80)

“얘들아,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하고, 이야기를 마치도록 하마. 파란색은 하늘에 속해 있어. 그러니 도난당할 위험이 없어. 그래서 선교사들이 이 섬에 처음으로 교회를 세울 때 창문을 파란색으로 만들었단다.” (88)

길버트의 삼촌은 바다에서 일하느라 검게 그을린 피부에 드럼통처럼 살찐 거구였는데, 우리에게 ‘깨진 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깨진 꿈을 가장 잘 찾을 수 있는 곳은 선창이라고 말햇다. “눈을 뜨고 입을 벌린 채 죽은 생선들을 한번 보세요. 그 생선들은 자기들이 바다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할 겁니다.” (89)

절대 잃어버리지 않고 영원히 자기 것인 줄 알았던 것을 잃게 될 때가 있지. 그게 한낱 발톱이라 하더라도 말이야. (101)

입고 있던 단 한 벌의 옷을 빨고 나면 우리는 옷이 햇볕에 마르기를 기다리며 벌거벗은 채 앉아 있어야 했다. (196)

작은 가지 하나가 나무 꼭대기에서 툭 하고 부러지며 떨어져 내렸으나 아무도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다만 그 나뭇가지는 우리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201)

우리는 부스럭대는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우리는 잽싸게 다가오는 고양이 발걸음소리가 들릴까 봐 가슴을 졸이며 귀를 기울이는 쥐였다. (209)

동틀 무렵이면 ... 그 시간에는 세상은 회색빛이고 더욱 천천히 움직인다. 바닷새들조차 자신의 생각에 심취해 있다. (219)

마틸다. 책을 읽는 척하는 건 불가능해. 눈을 보면 책을 읽고 있는지 다른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거든. 숨소리를 들어봐도 알 수 있지. 책에 몰입하면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곤 하니까. 만약 집에 불이 난다 해도 책에 심취한 사람은 벽지에 불길이 일 때까지 책에서 눈을 들지 않을 거야. 마틸다. 나에게 <위대한 유산>은 그런 책이란다. 그 책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뀌었지. (211)

내가 그 애를 깨우려는데 엄마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 애가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꿈은 자기만의 것이라고 엄마가 말했다. (261)

꿈은 예민한 것이다. 그래서 가혹한 말 한마디만으로도 말라 죽어 버린다. (269)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삶의 어느 부분은 공통되지 않기 마련이다. (322)

우리는 젊었어요. 그땐 모두가 젊은 줄 알았어요. 그게 바로 늙어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불만거리죠. 젊은 사람들만 보려고 해선 안 돼요. 주위에 홀로 남겨진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젊어서 젊은 사람만 보이는 건 아닌지 생각해봐야 해요. (333)

이제 난 지난 일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모든 일은 다리 밑을 흐르는 물처럼 지나가게 마련이죠. 또 목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고 해서. (334)

아빠는 텔레비전을 향해 야유했고, 손가락질 했고, 화를 냈다. (335)

언젠가 와츠 씨가 침묵은 당신이 태어나서 처음 배운 언어였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말해주었던 기억이 났다. (335)

담팔수 꽃들이 자신의 아름다운을 칭찬해주기를 기다리며 피어 있고 개들이 자기가 짖는 소리를 들어줄 청중을 찾으며 거리를 배회하고 있던 걸 제외하면 생명체라곤 보이지 않는 텅 빈 곳이었다. (336)

우리는 우리에게 보이는 것만을 본다. (340)

그는 무엇이든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 레드스킨 군대가 목숨을 요구하자 와츠 씨는 자신의 목숨마저 내주었다. (341)

나는, 두 볼에 켜켜이 슬픔을 간직하고 색색의 터번을 두른 조용한 인도 남자들로 가득 한 벤치를 지나 걸어갔다. (346)

가라. 떠나라. 그리하여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라.
강은 이 질척질척한 세계를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며 흐르고 있었다. (347)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새로운 자료를 갖고 오지 못했다. 내가 힘겹게 끌고 온 것은 이 울적함뿐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 내 뼛속 깊이 들어앉아 있다 마치 나쁜 날씨처럼 순식간에 나를 엄습해왔다. (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