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2006-비둘기
이      름: 요나단
작성일자: 2012.01.04 - 10:56
8쪽
결혼 생활이 무엇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마침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단조로운 평화를 맛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늘 꿈꾸어 왔던 것이었다.

그런 모든 불상사를 겪고 나자 조나단 노엘은 사람들은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 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13쪽
그 작은 방은 저녁에 그가 돌아오면 그의 체온을 따스하게 해주었고, 포근하게 감싸 주었으며, 그가 필요로 할 때는 영혼과 실체로서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주었고, 결코 그를 버리지 않았다.

49쪽
경비원이 스핑크스와 같다는 생각이었다. 뭔가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다만 서 있음으로 해서 역할을 다하는 의미에서 그랬다.

59쪽
조나단은 9시 정각에 근무를 시작해야 했지만, 그 거지는 10시나 11시에 모습을 나타내곤 했었다. 조나단이 뻣뻣한 자세로 서 있어야 되는 반면, 그는 골판지 가장자리에 방자하게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고 했다.

그래도 거지는 한 번도 골치 아픈 표정을 짓는 일이 없었고, 모자가 텅 비어 있어도 마찬가지였으며, 무슨 고통을 받고 있다든지, 두려워한다든지, 지겨워하는 구석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62쪽
남들이 다 지켜보는 자리에서 엉덩이를 까고, 용변을 볼 수밖에 없는 사정보다 더 비참한 일이 그의 생각으로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밑으로 끌어내린 바지춤과 쭈그리고 앉아 있는 자세와 어쩔 수 없이 망측하게 벗고 있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것은 정말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

부득이하게 용변! 그 말 자체가 이미 모든 괴로움을 다 말해 주고 있었다.

68쪽
그것은 분명히 두려움이었다. 잠들어 있는 거지를 보고 있던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무서웠다. 자기도 벤치에 누워 있는 그 폐인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였다. 빈털터리가 되고, 저런 밑바닥 인생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69쪽
조나단, 넌 올해 말이 되기도 전에 다 떨어진 누더기 옷을 걸치고 공원 벤치에 누워 있게 될 거야.

89쪽
정말 그 뜨겁고 지겹게 짓눌러서 숨막힐 것 같은 비둘기빛 청회색이 하늘을 향해 쏘고 싶었다. 그렇게 하여 하늘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서 납처럼 무거운 캡슐 같은 세상을 부서뜨리고, 붕괴하고, 추락하여 저 흉측스럽고, 지겹고, 시끄럽고, 악취 나는 모든 것들을 다 으스러뜨려 묻어 버릴 수 있게 하고 싶었다.

90쪽
그 모든 것의 잠새성은 <만약에 할 수만 있다면 진정으로 해보고 싶다>라는 가정에 묶여 있을 뿐이고, 조나단은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 잡다하게 끔찍한 생각들을 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자신이 그런 짓을 절대로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그는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참아내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