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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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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요나단
Subject   산으로 간 민달팽이
산으로 간 민달팽이



 따뜻한 봄이 되었습니다. 햇살이 내리쬐는가 싶더니 이내 비가 내렸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봄비였습니다. 가람이는 더듬이를 흙 밖으로 조심스럽게 밀쳐내었습니다. 땅 속으로 빗물이 스며들자 더 이상 웅크리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도 납니다. 봄이 온 것입니다. 빗줄기가 약하게 땅을 토닥거리고 있습니다. 가람이는 아랫더듬이를 내밀어 냄새를 맡아 봅니다. 장독대 옆에서 풀냄새가 납니다. 가람이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몸을 나뭇잎처럼 쭈욱 폈습니다.
 
"넌 누구니?"
집달팽이 한 마리가 앞을 가로막고 물었습니다.
"난 가람이라고 해."
가람이는 지난 해 여름에 태어났습니다. 가을에 어른이 되었지만 이내 추운 겨울이 닥쳤습니다. 겨울이 보통 때보다 한 달은 더 빨리 왔다고들 했습니다. 가람이는 낙엽을 수북이 쌓아 따뜻하게 만들고 그 아래 땅을 파고 들어가 겨우내 잠을 잤습니다. 그 사이에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렇지만 곧 형제들이 밖으로 나올 것입니다.
"누가 이름 물어봤니? 여긴 내 영역이야. 그러니 알아서 사라지는 게 좋을 거야. 집도 없는 민달팽이 주제에."
집달팽이는 화단을 돌아 장독대 앞으로 가더니 열심히 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가람이는 화가 났습니다. 태어날 때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다른 곳으로 가라니 억울했습니다. 게다가 집도 없는 민달팽이라며 놀리다니요.
"여긴 내가 태어난 곳이야. 그러니 네가 딴 데로 가."
가람이도 지지 않았습니다. 풀을 먹던 집달팽이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민달팽이가 어디서 집달팽이한테 대드니? 네가 여기서 태어났는지는 몰라도 일단 우리 집달팽이가 자리를 잡으면 민달팽이는 모두 다른 곳으로 가야 해. 그게 달팽이 세계의 법칙이야. 더 이상 집도 없는 민달팽이랑은 상대하기 싫으니까 이쯤에서 사라져 주면 좋겠어."
집달팽이가 위협하듯 더듬이를 위아래로 흔들었습니다. 가람이는 기가 찼습니다. 같은 달팽이끼리 서로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집 없다고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 없다고 무시하는 거니? 우리 민달팽이들은 다 집이 없어. 우리 엄마도 집이 없었고 우리 형제들도 다 집이 없다구."
"그러니까 불쌍한 달팽이들이지. 도대체 너희들은 어디서 자니?"
집달팽이가 한심하다는 투로 말했습니다.
"잠이야 흙 속이나 풀잎 뒤에서 자지. 그게 뭐 대수야?"
가람이는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얘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들이 공격하면 어디로 피하니? 우리 몸속에 있는 생명의 물을 다 앗아가버리는 따가운 햇살은 또 어떻고. 집은 우리 달팽이들에겐 꼭 필요한 거야. 그러니까 집 없는 너희 민달팽이들은 사실 달팽이도 아닌 거지."
가람이는 쉬지 않고 쏘아대는 집달팽이를 멍한 얼굴로 쳐다보았습니다. 집달팽이가 하는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람이는 겨울나기를 하기 전 풀잎 뒤에서 잠을 자다 강한 바람에 추워서 벌벌 떨던 일, 새의 공격을 받아 깜짝 놀랐던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그게 집이 없어서 그런 거였구나. 등에 집이 있으면 참 좋겠다.'
가람이는 집달팽이를 부럽게 쳐다보았습니다.
 
가람이는 배고픈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집을 등에 붙이고 다니는 달팽이들이 부러웠습니다. 집 없이 태어난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장독대 옆 화단은 온통 집달팽이 차지였습니다. 가람이는 화단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화단 아래 벽 틈에서 빗물에 촉촉이 젖은 민들레를 갉아 먹고 있는 자기 형제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엄마는 왜 날 이렇게 낳았을까?"
가람이는 앞더듬이를 쭉 뻗으며 민들레 잎을 툭 하고 건드렸습니다. 그 바람에 민들레 잎 위에 있던 바람이가 쭈르르 미끄러졌습니다.
"왜 심통이니?"
바람이는 얼마 전부터 가람이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너처럼 될까 봐 엄마가 집달팽이와는 가까이 하지 말라고 했던 거야."
바람이가 가람이를 보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우리를 속였어. 우리한테 집이 없으니까 집달팽이를 멀리하라고 했던 거야."
"가람아, 잘 생각해 봐. 등에 집을 붙이고 다니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도 추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잤잖아. 집달팽이는 자기 집 안에서 편하게 잤을 거야."
"그건 맞는 소리야. 하지만 집을 등에 붙이고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알기나 하는 거니? 집달팽이는 우리처럼 빨리 다니지도 못해."
"빨리 도망갈 필요가 뭐 있니? 집 속으로 숨으면 되는데."
가람이는 이제 바람이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혼자 떨어져서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안녕. 갑자기 끼어들어서 미안해."
누군가가 가람이에게 아는 체를 했습니다. 가람이처럼 등에 집이 없었지만 색깔도 칙칙했고 몸도 가늘고 길었습니다.
"난 지렁이야. 너처럼 물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지. 좀 전에 네 이야기를 엿들었어.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네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가람이의 뒷더듬이에 달린 눈이 번쩍 커졌습니다.
"무슨 얘긴데 그래?"
"뭐, 나도 전해들은 이야기니까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지렁이는 자신 없는 투로 말했습니다. 가람이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든 집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렁이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그래, 강이야. 강에 가면 버려진 조개나 고동으로 된 집들이 많다고 했어."
"강? 그게 뭐니?"
"나도 몰라. 강은 물이 어마아마하게 많은 곳이래."
"물웅덩이보다 클까?"
가람이는 예전에 보았던 물웅덩이가 생각났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꼭 한 두 군데는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물웅덩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야. 강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어. 어쨌든 거기에는 버려진 소라껍질이나 고동껍질이 많대. 그래서 집 없는 게들이 그런 껍질을 주워서 자기 집으로 만들어 가지고 돌아다닌 대."
"아, 그게 사실이라면 난 꼭 강으로 갈 거야."
가람이는 어느새 집을 구한 것처럼 등에 힘을 잔뜩 주었습니다. 집을 붙이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가람아, 미안해. 나는 강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지렁이는 쭈르르 빗물처럼 사라졌습니다.
 
가람이는 이내 바람이에게 달려갔습니다.
"바람아. 집을 구할 수 있는 사실을 알아냈어. 난 곧 집을 구하러 떠날 거야."
"집을 구한다고?"
바람이는 민들레가 입 안에 턱 걸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네가 어디서 집을 구한다고 그래? 집은 태어날 때부터 붙어서 나오는 거야. 민들레처럼 어디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바람이는 가람이가 걱정되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집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가잖아. 그러니 쓸 데 없이 고민하지 말고 그냥 나랑 여기서 살자."
바람이는 가람이를 다독거렸습니다.
"아냐. 강에 가면 버려진 집이 많대. 나는 꼭 거기로 갈 거야."
그 때였습니다.
"위험해!"
바람이가 소리쳤습니다. 집달팽이들은 순식간에 집 안으로 몸을 쑤욱 집어 넣었습니다. 가람이는 점액을 뿜어나 급히 민들레 아래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점액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가람아. 나를 따라 와. 민들레 잎 뒤로 숨어."
바람이가 급하게 가람이를 당겼습니다.
"안 돼. 점액이 나오질 않아. 너 먼저 숨어."
가람이는 바람이를 밀었습니다.
 
"야, 여기 달팽이다."
꼬마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잡아 볼까?"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이 달팽이는 집 속에 숨었네."
또 다른 아이가 말했습니다.
"야, 여기 와 봐. 여기 집 없는 달팽이가 있어."
또또 다른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아이들이 우 하고 가람이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가람이는 숨도 쉬지 못한 채 가만히 엎드렸습니다. 아이 손 하나가 등에 닿았습니다. 가람이는 깜짝 놀라 움찔했습니다.
"야, 이 달팽이 정말 미끄럽다. 너무 귀여워."
"에이, 그게 뭐 귀엽니? 난 징그럽기만 한대."
여자 아이가 남자 아이에게 핀잔을 주었습니다.
"잡아 가서 키울까?"
남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달팽이를 어떻게 키우니? 뭘 먹는지도 모르는데."
다른 남자 아이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맞아. 사람이 자꾸 만지면 죽을 지도 몰라. 다른 데 가 보자."
"저기 나비가 있다!"
한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아이들이 우 하고 나비한테로 몰려갔습니다.
 
"다 갔어."
바람이가 말했습니다.
"정말?"
가람이는 겁에 질려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정말 다 갔어. 눈 떠도 돼."
민들레 잎 뒤에 숨어 있던 바람이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가람이는 그제서야 피유 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정말이야. 집은 꼭 필요해."
가람이는 다시 결심을 했습니다.
"하지만 네가 떠나면 나처럼 위험을 알려주는 가족은 없을 거야. 우리 민달팽이는 가족이 바로 집이라구."
하지만 가람이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가람이는 시간만 나면 강이 어디에 있는지 달팽이들에게 물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걸 아는 달팽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집달팽이도, 민달팽이도.
 
짹짹.
장독대 화단 앞으로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가람이는 얼른 나뭇잎 아래로 몸을 숨겼습니다. 참새는 마당에 흩어진 먹이를 한참 쪼아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가람이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가람이는 숨을 죽였습니다. 참새와 가람이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습니다. 참새는 폴짝 뛰어 가람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에그머니나. 너도 벌레구나."
참새가 말했습니다.
"예. 전 집이 없는 민달팽이랍니다."
가람이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습니다.
"난 벌레가 싫어. 난 나무열매나 곡식만 먹을 거야."
참새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습니다. 이상한 참새였습니다. 벌레를 싫어하다니요. 참새가 포르르 날아갔습니다. 가람이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늘따라 하루가 길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날아가던 참새가 다시 가람이 앞에 내려앉았습니다. 가람이는 깜짝 놀라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놀라지 마. 난 널 먹지 않을 거야. 대신 내 부탁 좀 들어주지 않을래?"
"……."
가람이는 겁이 나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보다시피 난 다리를 다쳤어."
참새는 그러면서 종종 걸음으로 걸어 보였습니다. 그러고보니 한쪽 다리를 조금씩 절뚝거리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오늘 아침에는 벌레를 잡았다가 벌레에게 입 안을 쏘여 지금도 입이 얼얼하단다."
가람이는 그제서야 참새가 벌레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참새가 말을 이었습니다.
"너도 잡히면 뭔가를 막 쏘지?"
"예. 우리도 지독한 것을 내뿜어요."
"너도 그런 벌레였구나. 먹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야. 난 너 같은 벌레가 정말 싫어. 난 깨끗하고 안전한 음식만 먹을 거야."
참새는 부리로 깃털을 다듬는 시늉을 했습니다.
"알을 낳을 때도 가까워졌는데 아직 둥지를 만들지 못했단다. 그래서 움직이기도 힘들고 해서 이 부근에 둥지를 지으려고 해. 근데 다리 때문에 주위를 둘러보질 못하겠구나. 혹시 네가 이 곳을 잘 안다면 둥지로 괜찮은 곳을 알려 주렴."
"그건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 이 곳 사람이 사는 집은 조금 오래 되어서 처마 밑에 금이 가 있어요. 거기라면 나뭇가지들을 엮어 좋은 둥지를 만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짓궂은 아이들이 많아서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그 곳이 아니면 집 뒤에 장작더미 쌓여 있는 곳에 오래된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구멍도 뚫려 있어서 거기에서 사는 것도 좋을 거예요."
가람이는 지난 가을 태어난 곳을 열심히 돌아다닌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마워. 내가 여기 둥지를 짓고 살면 내 새끼들에게도 너 같은 벌레는 절대로 잡지 못하도록 할 게."
참새가 떠나려고 했습니다.
"잠깐만요."
가람이는 급하게 참새를 불렀습니다.
"무슨 일이니?"
"혹시 제 부탁도 하나 들어줄 수 있나 해서요."
"그래. 너도 나에게 도움을 주었는데 나도 네 부탁 하나쯤은 들어 주어야지."
참새가 말했습니다.
"혹시 강이란 곳을 아세요? 물이 엄청나게 많이 있는 곳이래요."
"강?"
참새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인 걸?"
가람이는 이내 실망이 되어 고개를 숙였습니다.
"강인지 몰라도 물이 계속 흘러내리는 계곡은 알아. 그 곳은 산 중턱에 있지. 거기에는 다슬기도 있고 가재도 있어. 어쩌면 그 곳에 네가 찾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
"그럼 그 곳으로 날 데려다 줘요."
"뭐라구?"
참새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가람이는 한참 동안 참새에게 계곡에 가야하는 까닭을 설명했습니다. 참새는 가람이의 열심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너는 정말 대단한 벌레야. 아마 달팽이의 미래를 바꿀지도 몰라. 좋아. 날 단단히 잡으라구. 산은 여기서 조금만 날아가면 되니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가람이는 참새 깃털에 올라탔습니다. 그리고 점액을 내뿜어 떨어지지 않도록 깃털을 최대한 붙들었습니다.
히융.
드디어 참새가 날아올랐습니다. 순간적으로 아찔하였지만 가람이는 이내 눈을 떴습니다. 얼마나 높이 올라왔는지 이내 민들레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커다랗던 달팽이들이 흙알갱이처럼 작아졌습니다. 구름이 휙 하고 나타나더니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참새는 순식간에 산에 도착했습니다.
쏴아 쏴아 쏴아
산에는 계곡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여긴 얕은 곳이니까 네가 집을 구하기도 쉬울 거야. 나도 집을 구해야 하니까 먼저 간다."
"예. 고맙습니다. 아픈 다리도 빨리 낫기를 바래요."
가람이는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람이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왔습니다. 어쩌면 참새에게 잡혀 죽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참새가 여기로 온 것을 알려주면 좋겠지만 바람이는 참새를 보면 숨고 말 겁니다. 벌레를 싫어하는 것도 모르고 말입니다.
 
산에 있는 계곡은 추웠습니다. 흙도 차가웠습니다. 하지만 집만 구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넌 어디서 왔니? 처음 보는데?"
갑자기 물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람이는 계곡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바위에 달팽이 같은 친구들이 올망졸망 붙어 있었습니다. 집달팽이와 비슷했지만 집달팽이는 아니었습니다.
"안녕? 난 가람이야. 그런데 너희들도 집달팽이니?"
"아니, 우린 다슬기라고 해. 달팽이하고는 먼 친척뻘이지."
"다슬기라고? 참새가 말하던 다슬기가 바로 너희들이구나. 그럼 오기는 제대로 온 모양이네."
가람이는 참새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음,  그러고보니 너도 집이 있구나."
"그럼. 우린 집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 넌 집이 없는 걸 보니까 민달팽이구나. 그런데 산에는 어떻게 왔니? 여긴 달팽이들이 살지 않는데."
"응, 나도 집을 갖고 싶어서 왔어. 너희처럼 나도 집을 갖고 싶어. 강에 가면 집으로 쓸 수 있는 조개껍질이 많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 왔어. 조금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빈 고동껍질이 많이 있어. 아마 네 몸에 맞는 껍질도 있을 거야."
"그건 그렇고 너흰 어떻게 그렇게 센 물살에 붙어 있니?"
"발을 바위에 딱 붙이면 이까짓 물살은 아무 것도 아니야."
다슬기들이 합창을 하듯 대답했습니다. 가람이는 숨을 한 차례 훅 들이 마신 뒤 조심스럽게 다슬기가 있는 바위로 몸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바위에 붙였습니다. 눈을 꾹 감고 숨도 쉬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래로 내려가자 물살이 조금씩 약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을 살짝 떠 보았습니다. 고동껍질 몇 개가 눈에 보였습니다. 가람이는 빈 껍질을 찾아 몸을 쑥 넣어 보았습니다. 몸이 완전히 가려졌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커다란 집게발이 가람이를 후려쳤습니다. 가람이는 정신을 잃은 채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집게발에 금이 간 고동껍질은 바위에 부딪치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어서 몸을 바위에 붙여."
다슬기들이 가람이를 위로 올렸습니다. 가람이는 정신을 차리고는 힘을 내어 바위 위로 올라갔습니다.
"정말 다행이다. 이곳에는 무서운 가재가 살고 있어. 물속에 들어가기 전에 그 얘길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
다슬기가 말했습니다.
"아니, 날 살려줘서 정말 고마워. 어, 그런데 내 집은 어디 갔지? 분명히 고동껍질을 쓰고 있었는데."
"저거 말이니? 깨졌어."
가람이는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드리고 말았습니다. 힘들 게 구한 집인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다슬기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왜 우니?"
"집이 부서졌대."
"안 됐구나. 하지만 저건 껍데기지 집이 아니잖아."
가람이가 울음을 뚝 그쳤습니다.
"껍데기라고?"
"그래, 저건 껍데기일 뿐이야. 저게 자신을 완전히 보호하지는 못 해. 가재가 앞발을 한 번만 휘두르면 마른 나뭇잎처럼 부서지는 걸."
"그럼 어떻게 죽지 않고 살아가니?"
가람이는 눈물을 훔치며 물었습니다.
"넌 가족이 없나 보구나. 그럼 여기서 우리랑 살아. 그러면 안전해. 가재가 나오는지 금방 알아채고 서로에게 알려주거든. 그러면 모두 바위 위로 올라오지."
"나도 가족이 있어."
가람이는 바람이를 떠올렸습니다.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랫동안 헤어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바람이가 그리워졌습니다. 바람이의 말투랑 더듬이짓 하나하나가 그리워졌습니다.
"날 도와줘서 고마워. 나도 가족이 있어. 이제 가족에게로 갈 거야."
“산을 혼자서 내려가기는 힘들 텐데.”
다슬기들이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걱정해줘서 고마워. 산 아래에 나를 걱정해주는 진짜 가족이 있어.”
“그렇구나. 그렇다면 말리지 않을 게. 조심해서 내려 가.”
다슬기들이 합창하듯 배웅했습니다.
가람이는 앞더듬이를 쭉 뻗었습니다. 그리고 힘차게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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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18 -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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