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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편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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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요나단
Subject   수호천사
수호천사
                                                            
멀리서 기태가 책가방을 빙빙 돌리며 뛰어오고 있다. 기태는 기분이 좋으면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붕붕거리며 돌려대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그것이 어떨 때는 책가방이었다가 어떨 때는 신발주머니였다가 한다. 가끔씩 도시락통이나 학교 준비물로 바뀔 때도 있지만 그건 아주 가끔씩 그렇다. 언젠가는 국어시험에서 10점 올랐다며 신발주머니를 돌리면서 뛰어가는 바람에 신발이 빠져나가 도랑에 빠진 적도 있었다.

"달수야. 이번에 부모님 초청 발표회 때 우리 이야기를 연극으로 꾸민대.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이 연극 주인공으로 뽑혔어."
기태는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숨을 헉헉거린다. 아마 담임선생님께 이야기를 먼저 전해들은 모양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피우면서 뛰어오니?
나는 짐짓 별 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장난처럼 기태의 가슴팍을 툭툭 쳐 주었지만 사실 기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비밀로 해 온 이야긴데 여러 부모님 앞에서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하니까 많이 떨린다. 얼굴이 조금씩 화끈거리며 속내를 들킨 여자애처럼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지금까지 몇몇 사람만 알고 있던 비밀스런 이야기는 이번 연극으로 인해 이제 모두에게 알려질 참이었다. 그 비밀스런 이야기란 바로 지난 해 이맘때쯤,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을 막 앞둔 때의 일이었다. 연극이 시작되고 막이 오르면 아마도 달수라는 아이가 무대 중앙에서 이렇게 중얼거리며 연극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에는 꼭 성공할거야.'
달수는 추워서 발갛게 된 입술을 앙다물었다. 열흘 뒤에 시작되는 겨울방학 때 달수는 아무 말 없이 가출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달수 혼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이었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가출 계획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죽기라도 한다면 친구 한 명쯤은 알고 있어야 부모님께 알려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명철이? 아냐 아냐. 나랑 친하기는 하지만 내 비밀을 지켜줄 만큼 입이 무겁질 않아.'
달수는 머리를 굴리며 여러 친구들을 떠올렸지만 마땅한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달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래. 기태가 좋겠다."
기태는 학교 친구긴 하지만 그리 친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 기태가 하도 졸라서 교회에 따라 나섰는데 주일학교라고 부르는 곳이 그런 대로 재미가 있어 아직까지 다니는 중이었다.

'그래. 교회 다니는 친구들은 괜찮을 거야. 설마 비밀을 선생님한테 이르지는 않겠지.'
달수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기태를 불렀다.

"기태야. 나랑 얘기 좀 하자."
"어, 달수구나. 안 그래도 너를 만나려고 했는데, 왜?"
"나를 만나려 했다고?"
"응, 이번에 전국 교회 웅변대회가 열리는데 내가 너를 우리 교회 대표로 추천했어."
"뭐? 날 추천했다구?"
달수는 깜짝 놀랐다. 가출을 앞 둔 마당에 웅변대회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안 돼. 난 안 돼."
"왜? 넌 학교에서도 웅변상을 탔잖아."
"사실, 내가 널 보자고 한 건……."
달수는 말을 꺼내긴 했지만 쉽게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래. 네 얘기 먼저 들어보자. 왜 보자고 했는데?"
이제는 기태가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래, 기태한테만 말하는 거야. 그래야 웅변대회 못 하는 이유도 밝힐 수 있잖아.'

달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좋아. 내 얘기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말해 줄 게."
기태는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곧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나는 방학 때, 가출 할 거야."
"뭐? 가출이라고?"
기태가 깜작 놀라 크게 소리쳤다.
"쉿. 조용히 해."
달수는 얼른 기태 입을 막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달수는 기태의 입에서 손을 떼었다.
"너, 집 안에 무슨 일 있는 거구나. 부모님이랑 싸웠니?"

기태는 달수의 눈치를 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달수는 기태가 부모님이랑 싸웠냐고 물어보자 갑자기 가슴 속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훅 하고 올라왔다. 서러움 같기도 한 것이 달수의 온 몸을 훑고 지나갔다. 달수는  애써 감정을 없애려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누나가 지난 추석 때 집을 나가 아직 안 돌아왔어."
달수는 오랫동안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친구들에게 한 번도 얘기하지 않았던 누나 이야기를 꺼내 놓자 다시 눈물이 핑 돌았다. 기태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자신이 바닷가에 처량하게 버려진 조개 껍데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수는 글썽이던 눈물을 훔치며 기태를 바라보았다.

"우리 누나는 구제불능이야. 벌써 스무 번도 더 넘게 가출했어. 아빠는 날마다 술 마시고 들어오지, 그것 때문에 엄마 아빠는 맨날 싸워. 집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어."
"그래도 부모님이 너한테 많은 걸 기대하고 있을 텐데 너마저 가출하면 어떡하니?"
"다 필요 없어. 이번 방학 때는 꼭 실행에 옮길 거야. 집에서는 숨이 막혀 살 수가 없어. 집이 꼭 지옥 같단 말이야. 기태야. 교회 선생님에게는 네가 적당히 잘 둘러대 줘."
달수는 큰 죄를 지은 사람마냥 도망치듯 그 자리를 달려 나왔다.
 
오늘은 겨울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다. 달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선생님이 나눠주는 방학숙제와 성적표를 받았다.  
"달수는 이번 방학 때 뭐 할 거니?"

갑작스런 선생님의 질문에 달수는 꼭 가출계획을 들킨 것처럼 더듬거렸다.
"저, 저……."
"건강하게 잘 지내라. 방학 끝나면 보자."

선생님은 달수의 대답을 들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는지 어느새 뒷자리 학생에게 가 있었다. 드디어 종이 울리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달수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총총 걸음으로 교문을 빠져 나왔다. 집 가까이에 이르자 멀리서부터 엄마와 아빠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달수는 온 동네 창피하게 싸우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 소리 없이 들어간다고 방문을 열었는데 엄마는 귀신처럼 알아차렸다.

"달수 왔니? 얼른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누나 중학교 뒷산 언덕배기로 가 보거라. 거기에서 누나를 봤다는 사람이 있다."
엄마 목소리는 마른 모래처럼 많이 갈라져 있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방학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는 듯 했다. 엄마는 당뇨와 관절염으로 대부분 시간을 집에 누워서 지냈다. 엄마는 누나가 가출을 하기만 하면 언제나 달수에게 누나를 찾아 오라고 밖으로 내몰았다. 달수는 누나를 찾으러 가라는 엄마 얘기를 듣자 자연스럽게 가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라리 더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오늘 밤까지는 자기를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달수는 정신 없이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엄마 친구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야 했다.

"달수야. 나랑 같이 가자."
갑자기 기태가 어깨에 배낭을 맨 채 정류장에서 불쑥 나타났다.

"기태야. 여긴 어떻게?"
"네가 심심할까 봐 나도 같이 가려고 나왔지. 어때, 괜찮지?"
"알잖아. 나 여행하는 거 아니야. 그리고 네 집에서 알면 어쩔려구 그래?"
"집? 나도 그 동안 부모님께 불만이 많았는데 이 참에 가출해보는 거지, 뭐 어때? 그리고 너 혼자 돌아다니면 무서울 거 아냐."
"무섭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달수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는 아무래도 위험했다. 둘이 같이 다닌다면 불안감도 좀 가실 것이고 용기도 생길 수 있을 것이었다.

"좋아. 그렇지만 너 나중에 나 때문에 불량학생 됐다고 나한테 원망하지 마라. 네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달수와 기태는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사람도 드문 데다가 겨울바람까지 몰아치니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멀리서 비릿한 바다 내음이 몰려 왔다. 골목을 돌아 조금 더 걸어가자 한적한 바다가 나타났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해가 빨리 바다 아래로 가라 앉았다. 해가 지자 바닷가에는 포장마차가 하나 둘 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한적했던 해변은 어느새 시끌벅적한 밤의 도시로 바뀌고 있었다.

"달수야. 배 고프다. 뭐 좀 먹자. 음, 어디가 좋을까? 어, 저기 포장마차가 있네?"
달수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기태는 달수 손목을 붙잡은 채 포장마차로 쑥 들어갔다.

"여기 가락국수 두 그릇 주세요."
달수는 포장마차란 곳도 처음 들어와 보거니와 행여 사람들이 가출한 것을 알아차릴까 봐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는데 기태는 아주 익숙하게 음식을 시켰다.  
"배가 부르니까 이제 좀 살 것 같다."
기태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너는 겁도 안 나니? 그리고 포장마차에 많이 와 본 솜씨 같더라. 나는 떨려서 혼 났는데."
"사실은 우리 아빠가 포장마차를 하셔. 얼마 전까지 중소기업에 기술자로 계셨는데 뭐가 잘못됐는지 그만 쫓겨났어. 지금까지 직장을 못 구해서 포장마차를 하시는데 나도 가끔 가서 도와 드려."
기태 아버지가 포장마차를 한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달수는 그 동안 자기가 너무 기태에게 무관심했다는 게 미안해졌다.

"많이 힘들겠구나."
"별 거 아니야. 울 아빠가 더 힘들지 뭐. 그건 그렇고 달수야. 이제 어떻게 할 거니?"
"그, 그건, 그래! 신문배달을 할 거야. 새벽에는 신문배달하고 낮에는 신문 대금 받으러 돌아다니는 아르바이트가 있는데 원하면 잠도 재워 준대."

달수 입에서 얼떨결에 신문배달을 한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건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지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달수와 기태는 가로등 아래 전봇대를 찾아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달수는 감기가 걸렸는지 기침까지 해대었다.

"찾았다. 신문배달 구함. 숙식 제공. 무경험자 환영."
기태가 저 앞에서 소리쳤다. 조금 더 앞으로 가자 불을 환하게 밝히고 신문에 넣을 광고 전단지를 정리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부모님 허락이 없으면 신문배달을 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참을 옥신각신하다 기태는 달수에게 잠깐 기다리라는 눈짓을 하고는 혼자 아저씨랑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기태와 아저씨가 웃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좋아. 너희들을 믿을 테니까 열심히 일해야 한다."

"어떻게 된 거야?"
달수가 깜짝 놀라 기태에게 소근거렸다.
"사정사정하며 빌었지. 고아원에서 도망쳐 왔는데 다시는 고아원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야, 너 교회 다닌다며 거짓말을 그렇게 하면 되니?"
"거짓말은 나쁘지만 하나님도 이런 거짓말은 봐 주실 거야. 너 좋은 친구 만난 줄이나 알아."

기태는 혼자 힘으로 이번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가 없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정을 설명하고 아저씨에게 부모님 확인을 시켜주고 나서야 신문배달 허락을 받아 내었다. 물론 달수는 까맣게 모르는 일이지만.
다음날 달수와 기태는 신문을 배달하게 될 구역을 돌아보며 열심히 지리를 익혔다. 저녁이 되자 둘은 약속이나 한 듯이 바닷가로 갔다. 한참 동안 둘은 서로 아무 말 없이 이미 어두워진 바다만 쳐다보았다.

"지금 누나가 가출 중이라고 했잖아."
달수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누나가 가출하면 나는 날마다 누나를 찾으러 다녀야 했어. 엄마가 아파서 찾으러 못 다니니까 나를 시키는 거지. 학교 갔다 집에 오면, 오늘은 어딜 다녀 와라, 엄마는 그렇게 나에게 그날 돌아다녀야 할 동네를 알려주셨지. 처음에는 누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돌아다녔지만 점점 그 일이 싫어졌어. 하루 이틀 하고 나면 짜증도 나고 누나 때문에 이렇게 쉬지도 못하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누나까지 미워지는 거야."

기태는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며 달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파도도 달수의 이야기에 맞춰 살짝 다가왔다 소리없이 살짝 물러갔다.
"그 날도 엄마가 찾아보라는 곳을 건성으로 돌아다니고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저 멀리 누나가 보이는 거야. 나는 놀라서 몰래 다가갔지. 정말 누나였어. 그런데 나는 누나인 걸 확인한 순간 그냥 도망쳐 버렸어. 누나를 못 본 것처럼 말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못 찾은 거야?"
"응. 그 때는 누나가 미웠는데 지금은 누나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걱정이 되기도 해."
달수는 벌떡 일어나 돌멩이 하나를 바다로 던졌다. 돌멩이는 풍덩 소리를 내더니 흔적 없이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 앉았다.

"달수야. 부모님도 네 마음 알고 계실 거야. 네가 착하고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니까 믿고 네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거구."
"알아. 하지만 이제는 나도 내 삶을 가지고 싶어. 누나도 싫고 부모님도 싫어."
"그렇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돌아가면……."

"다시 돌아가다니, 나한테 뭘 가르치려고 하지마. 네가 뭔데 그래!"
달수는 벌떡 일어나 어둠 속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기태는 깜짝 놀라 일어섰지만 곧 자리에 다시 앉았다. 감정이 가라앉으면 다시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다. 기태는 이런저런 생각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다가 깜짝 놀라 일어섰다. 꽤 시간이 지난 듯 했다. 달수가 돌아오지 않자 불현듯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달수야! 어디 있니? 달수야!"
기태는 달수가 사라진 쪽으로 뛰어가며 달수를 불렀지만 달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헤매던 기태는 일단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 들어가는데 저 멀리 골목 구석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이게 다야. 뒤져서 돈 더 나오면 죽을 줄 알아."
깡패들의 험상궃은 목소리가 분명했다.

"아저씨. 이게 전부예요. 정말이예요."
그런데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지만 저 목소리는 분명히 달수 목소리였다. 달수는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기태는 들키지 않게 가로등이 있는 환한 곳으로 뛰어 나왔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선생님, 저 기탠데요. 달수가 깡패들에게 붙잡혔어요. 어떡해요?"
"기태구나. 그래 알았다. 네 위치는 휴대폰 추적장치로 알 수 있으니까 경찰에 신고해서 곧 가도록 하마. 달수가 위험할지 모르니까 너는 얼른 다시 가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해라."

기태는 다시 살금살금 달수가 있던 쪽으로 다가갔다. 어둠에 조금 익숙해지자 달수가 길바닥에 엎드린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기태는 깜짝 놀라 달수에게 뛰어갔다.
"달수야. 어떻게 된 거니?"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서너 명의 불량배들이 순식간에 나타나 기태를 에워쌌다.
"내가 한 놈 더 있을 줄 알았지. 오늘 수지 맞았는 걸?"

불량배 중에서 덩치가 제일 큰 녀석이 주먹으로 기태의 배를 때렸다.
"헉."

기태는 그 자리에 고꾸라졌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간 불량배 녀석이 기태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 녀석 부잣집 아들인 모양인데, 이거 팔면 꽤 값이 나가겠는걸?"
기태 외투를 뒤지던 불량배가 외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솔직히 말 해. 너 이거 어디서 났어. 훔쳤지?"
대장격으로 보이는 불량배가 기태 배를 발로 툭툭 차면서 물었다.
"훔, 훔친 거 아닌데요. 선생님이 주신 건데요."
"학교 선생님이 미쳤다고 이 비싼 걸 너한테 주냐? 솔직히 말 해."
불량배는 기태 가방을 뒤져 용돈으로 숨겨 둔 현금을 찾아 내었다.
"형님. 이거 보통 부잣놈이 아닌데요."
"야, 지금 히히덕거리며 놀 시간 없어. 얘들 신고 못하게 몇 대 더 때리고 빨리 가자."
대장의 신호가 떨어지자 양 옆에 서 있던 불량배들이 기태와 달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하고 그냥 맞고만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큰 길 쪽에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경찰들이 뛰어왔다.
"튀어. 경찰이다."
불량배들이 놀라서 달아나기 시작했지만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모두 붙잡히고 말았다.

"기태야."
"달수아."
저 멀리서 학교 담임 선생님과 기태 부모님, 그리고 달수 부모님이 함께 달려 왔다. 달수와 기태는 병원에 누워 간단한 조사를 받았다.

"너희들 정말 운 좋은 줄 알아라. 이렇게 좋은 선생님과 부모님이 계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큰일날 뻔 했다."
달수의 엄마는 달수를 꼬옥 붙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달수야. 그 동안 고생은 안 했니? 못난 어미 때문에, 정말 미안하다."
"엄마는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달수는 아파서 누워 있어야 할 엄마가 달려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네 엄만 네가 가출하자 너를 꼭 찾아야 한다고 억지로 일어났단다. 네 사진을 가지고 전단지를 만들고 삼일 동안 한 숨도 안 자고 돌아다녔지. 네 언니 때는 꼼짝 않고 누워 있더니만."
달수의 아빠가 수척해진 얼굴로 대신 대답했다.

"네가 가출하고 엄마랑 많은 얘기를 했다. 그 동안 누나 때문에 우리가 달수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써서 정말 미안하구나. 그리고 아빠도 이제 술을 끊기로 했다. 이 아빠를 용서해줄 수 있겠니?"
"엄마 아빠. 제 생각이 짧았어요. 앞으로 다신 가출하지 않을게요."

달수는 엄마 아빠를 꼬옥 껴 안았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로는, 기태가 달수의 가출사실을 웅변대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 선생님에게 털어 놓았고, 교회 선생님이 학교 선생님과 이 문제를 의논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은 기태 부모님 허락을 받아 기태가 달수를 따라가도록 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휴대폰을 기태에게 주어 수시로 달수의 상황을 문자메시지로 알리도록 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스파이였구나."
달수가 기태의 어깨를 툭 하고 밀었다.
"스파이가 아니고 수호천사였지."
기태도 지지 않고 달수의 어깨를 맞받아치며 밀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때에 경찰이 올 수 있었을까?"
"글쎄, 그런 걸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아니면 정말 수호천사가 있었던지."
연극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나와 기태는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신문사에서도 취재해 가고 덕분에 편지를 보내 오는 여자친구도 많이 생겼다. 아빠는 아직도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엄마는 가끔씩 시장에 다닐 정도로 좋아지셨다. 기태와 나는 요즘 인터넷으로 초등학생 가출상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하면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많이 그리워질 것 같다. 가끔씩 그 때 그 바닷가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기태야. 오늘 그 때 그 바닷가 한번 가 볼래?"
"좋지. 그때 신문배달 아저씨도 보고 싶고."
"근데, 우리가 타고 간 버스가 몇 번이었지?"
"몰라.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니? 할 수 없지. 내일 학교에서 보자."
"그래. 잘 자. 내 꿈 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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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1.02 -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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